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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사상사학회, Vol.34 (2018)
pp.5~27

- 전후 일본의 ‘반지성주의’와 마이너리티 - 양정명과 도미무라 준이치를 중심으로 - -

곽형덕

(광운대학교 산학협력단 박사 후 연구원, 일본근현대문학 전공)

이 글은 전후 일본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반지성주의’적 경향을 양정명과 도미무라 준이치의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한 글이다. 재일조선인 양정명과 오키나와인 도미무라 준이치는 1970년에 각각 분신자살과 도쿄타워 점거사건을 일으키는 것으로 일본 내의 민족 차별과 전쟁 책임방기에 항의했다. 양정명의 분신자살은 자기 존재에 대한 비극적이고도 처절한 심판이었다. 양정명은 전공투 투쟁을 통해 일본 사회를 민주화시켜 자신을 둘러싼 민족 차별 문제를 해소시키려 했다. 하지만 학생운동이 퇴조하자 그는 자신의 갈 길을 잃었다. 귀화를 했지만 일본인으로 살아 갈 수 없고, 조선인으로서의 삶을 꿈꿨지만 그마저도 부정된 그의 삶은, 1970년에 끝났다. 하지만 우리는 양정명의 죽음을 그저 추도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끝나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되는 헤이트스피치와 뿌리 깊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도미무라 준이치는 1970년 7월 도쿄타워에서 인질사건을 일으켰다. 그는 법정에서 일본 천황(天皇)의 전쟁책임과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책임을 정면으로 비판했다.도미무라의 도쿄타워 인질 사건은 일본을 역사의 재판에 세우기 위해 스스로 피고가 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일본 내 마이너리티를 향한 반지성주의적 경향은 전후민주주의가 융성하던 시기에도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혁명의 에너지가 꺼져가자 일본인과 소수민족 사이의 구별선은 이전보다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 양정명과 도미무라 사건은 마이너리티를 향한 일본 사회의 차별과 식민주의적 위계가 소멸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외침이었다. 그것은 끝난 과거의 목소리가 아니라 메아리로써 현재의 우리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Anti-intellectualism’ and Minority after Post-war period Japan - Focusing on Yang Jungmyung and Tomimura Junichi -

Kwak, Hyoung-duck

This article analyzes the tendency of ‘Anti-intellectualism’ with focusing on the case of Yang Jungmyung and the case of Junichi Tomimura after post-war Japan. Yang Jungmyung, a naturalized Japanese citizen, and Tomimura Junichi, an Okinawan, had protested the national discrimination and abandonment of Japanese war responsibility in Japan. Yang Jungmyung’s suicide was a tragic and sorrowful judgment of self-existence. Yang endeavored to democratize Japanese society through Zenkyoto student movement in order to escape from national discrimination in Japanese society. But when the student had movement collapsed, he lost his way. Although he was naturalized as Japanese, he was not able to live as a Japanese. Yang set himself alight and died in 1970. We are not able to just commemorate the memory of Yang’s death. This is because it is not the ending past. It is not difficult to say that hate speech against zainichi Korean which brought Yang’s death has threw its shadow in Japanese society. Tomimura Junichi caused the hostage case in Tokyo Tower in July 1970. In the courtroom he criticized the Japanese Emperor for war responsibility and colonialism of Japanese imperialism. Tomimura’s Tokyo Tower hostage case was a strategic choice to become a defendant himself in order to put Japan on trial of history. The anti-intellectual tendency toward minorities in Japan remained deeply rooted in the period of postwar democracy. When flame of the revolution was blown out, the distinction between Japanese and ethnic minorities became very clear. Yang Jungmyung and Tomimura Junichi’s outcries illuminate that the discrimination of Japanese society towards minorities and the colonial hierarchy had not been over. Their outcries are not an ending voice from the past, but an echo that is being conveyed to the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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